기력 보충으로 '으뜸'
무덥고 지친 날, 한 뚝배기 하실래예?
▲한국의 갈비탕과 비슷한 비주얼의 불랄로 Copyright ⓒDavid Kim
그건 분명 티라노사우루스의 뼈였을 터. 얼마나 진하게 우려냈는지 누르스름하고 걸쭉한 점성까지 느껴지는 육수에 몽둥이 같이 생긴 커다란 뼈 하나가 담겨져 나왔다. 그 옛날 우리네 선조들이 무더운 여름날 쇠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지혜로운 영양식의 레시피를 개발해냈듯, 필리피노 역시 뜨거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영양탕을 만들어낸 듯하다. 한국에 영양탕, 삼계탕이 있다면 필리핀의 스테미나 음식으로는 불랄로가 되는 것.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고 이 불랄로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온몸이 소의 정기로 가득 차오르는 듯 충만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불랄로는 필리핀식 도가니탕 또는 갈비탕이다. 소 다리뼈와 소머리 등을 넣고 푹 끓여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레시피도 지역마다 나름의 차이와 특색을 지니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감자나 배추, 아스파라거스 채소를 함께 넣어 국의 점성을 줄이고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다른 지역에서는 일절의 야채 없이 순수 소고기 부속품만 넣어 끓이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같은 지역 안에서도 식당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고로 자신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불랄로를 찾기 위해서는 몇 번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뼛국물이 우러난 보양식이라 해도 덜렁 몽둥이 뼈 하나가 나오는 불랄로는 볼 때마다 놀랍기 그지없는 비주얼이다. 오래 끓여서 진한 고깃국 맛이 나는데 얼큰하고 짭조름하면서 시큼한 것이 엄청난 양의 소금과 식초가 들어간 것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맛은 한국의 갈비탕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졌는데, 이 국물 맛의 비밀을 며느리는 알고 있을까.
뭐니뭐니해도 불랄로는 한손으로 몽둥이 뼈를 들고 뼈에 붙어 있는 쫀득쫀득한 콜라겐 덩어리를 뜯어 먹어야 제맛이다. 나무꼬챙이를 이용해 뼈 속의 연골도 빼 먹는 알뜰함도 보여야 한다. 어떨 땐 운이 좋아(?) 국물에 우설(牛舌)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그 날은 정말 횡재한 거다. 그래서 그런지 필리핀의 불랄로를 먹고 오는 날이면 소 한 마리를 먹은 듯 속이 든든하다. 한 가지 더, 한국인이라면 불랄로의 효력을 '지대로' 느끼기 위해서 깍두기를 챙겨가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