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합작품, 짬뽕 삼국지
진짜 원조는 중국?!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한국은 얼마 전까지 백짬뽕, 백라면의 인기로 후끈 달아올라있었다. 시장점유율 1위 신라면의 아성 아래 줄을 이었던 빨간 국물 라면의 전통적인 인기가 빽짬뽕 스타일의 하얀 라면의 파상공세에 오랫동안 주춤댔던 것이 사실. 그동안 한국인들에게 거의 선입견처럼 못 박혀 있었던 ‘라면은 맵고 얼큰해야 한다’는 명제가 빨간 스프 없이도 실현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얀 국물 대세론을 만드는 데 압도적인 공을 세운 제품은 바로 삼양의 ‘나가사키짬뽕’. 중국집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짬뽕에 빨간 고춧가루만 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디테일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또 우리나라의 짬뽕 신드롬이 중국에서 바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에 살던 화교 출신 주방장이 중국인 나가사키 현지에서 만든 것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일제치하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중국에서 일본을 거쳤지만 마치 일본이 오리지널인양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일본은 모사품을 진품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 오리지널을 자처하는 데 신출한 재능을 지닌 듯하다. 그럼 나가사키짬뽕은 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나가사키짬뽕이 창시된 원조 가게 ‘시카이로’의 변함없는 맛. copyright ⓒ부산일보
배고픈 청춘을 구원한 ‘긍휼’의 맛
현재는 나가사키를 상징하는 ‘궁극’의 맛!
메이지 시대의 나가사키는 일본 열도로 진입하는 입구이자 중국과 한반도를 왕래하는 연락선이 정박하는 주요 항구였다. 하여 그 무렵에 중국 상인들이 나가사키 등 개항지로 많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때 중국에서 온 천핑순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19세의 나이로 행상을 시작해 돈깨나 모았던 모양이다. 그 돈으로 여관시설을 갖춘 중국요리점 ‘시카이로’를 열게 된다. 한데 개업을 하고 보니 한창 먹을 나이의 젊은 중국 유학생들이 만리타향에서 돈이 없어 배를 곯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던 것.
값싸고 영양가 풍부한 요리이나 나가사키짬뽕의 시초인 ‘시나우동’을 만들어냈다. 당시 일본에서 선호하지 않던 돼지 뼈와 닭 뼈, 내장 등을 가져다가 푹 고아 육수를 내고 쫄깃한 면을 삶아 넣었다. 여기에 나가사키의 신선한 해산물을 올리고 양배추와 파, 숙주나물 등을 기름에 살짝 볶아 양껏 얹었다. 맛은 물론이요 영양까지 고루 갖춘 이 기적과 같은 음식은 중국 유학생들을 넘어 나가사키 전체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시카이로의 신화’보다는,
한국인의 입맛에 더 잘 맞는 대마도 스타일 짬뽕
한데 나가사키의 이 오리지널 짬뽕은 맛을 잔뜩 기대하고 간 미식가들에 의해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짜고 필요 이상으로 강한 불향에다가 전반적으로 너무 느끼하다는 것이 문제. 이에 느끼함을 잡고 해물육수에 좀 더 공을 들여 담백함과 칼칼함을 가미한 대마도 스타일의 나가사키짬뽕이 한국인의 입맛에는 더 맞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마도는 돼지뼈와 잡육을 섞어 넣는 나가사키 식의 진한 국물보다는 닭과 해물 위주로 개운한 육수를 내는 것을 선호한다. 여기에 일본인이 사랑하는 간장소스로 밑간을 슴슴하게 하여 기존 나가사키짬뽕의 텁텁하고 느끼한 맛을 혁신적으로 절제시켰다. 하여 그 맛은 짬뽕이라기보다는 우동에 가깝지만 막상 우동이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짬뽕의 여운이 남아있는 그런 매력이 묻어나는 것이다. 이는 대마도의 지리적 특성상 한국과의 교유가 잦고 한국인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우리네 입맛에 맞춰 조금씩 개량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