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로왕비릉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오시는길
경전철 봉황역 하차 후 봉황역 정류장에서 일반버스 14번 환승 후 청소년문화의집 하차 또는 일반버스 7번 환승 후 김해여중 하차
한줄정보
이용시간 9시 ~ 18시 / 입장료 無 / 주차장 有(무료) / 월요일 휴관
상세설명
경전철을 타고 선로 위를 롤러코스터 타듯 가다보면 수로왕릉역 정차를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김해 김씨의 시조 수로왕의 위업이 역 이름으로까지 남겨졌다. 그의 부인 수로왕비 역시 수로왕릉에서 가까운 어딘가에 잠들었으리라. 하지만 그녀가 영면에 든 구산동은 수로왕비역이 아니라 단지, 박물관역이다.

놀랍게도 수로왕의 왕비는 외국인이다.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라뜨나’, 꽃다운 나이에 만리타향에서 이방인을 남편으로 맞으면서 이름도 허황옥이라 짓게 된다. 그런 그녀와 수로왕 슬하에 열 명의 아들이 생기게 되고, 그 중 두 아들에게 허황옥은 자신의 성을 따르게 했다고. 이는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고, 이로 인해 예부터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혼인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수로왕 가족은 한국 다문화 가정의 진정한 효시(嚆矢)가 아닐까.

수로왕이 네모반듯한 평지에 잠든 것에 비해 제법 높은 위치에 자리한 왕비릉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쓸쓸한 느낌이다. 아무리 국모라 해도 궁궐 담장 안의 ‘아녀자’ 이상의 해석을 허용치 않았던 조선시대에 정화된 탓일까. 지리적인 조건과 규모, 분위기 면에서 수로왕릉의 위용에 한참 밀리는 느낌이다. 그에게도 부인이 있었고, 왕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약속이나 한 것처럼 후손들은 잊고 있는 듯하다. 찾는 이도 극히 드물어, 이곳엔 외로움과 적막만이 감돌고 있다.

대략 5미터 정도 키의 원형 봉토무덤과 그 주위를 사각형 모양으로 둘러싼 돌담이 보인다. 무덤 앞에는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탑의 석재가 남아있다. 왕비가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올 때,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싣고 왔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달리 ‘진풍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석탑은 이색적인 재질과 구조로 만들어져 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이 외에도 경내에는 숭보재, 외삼문, 홍살문 등을 보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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