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시간 9시 반~ 20시 반 / 예산 만5천원 / 대표메뉴 육회비빔밥 / 주차장 有 / 매월 첫째, 셋째주 월요일 휴무
상세설명
한국 비빔밥의 본고장은 어디일까, 라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전주라고 대답할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전주가 비빔밥의 본고장이 맞긴 하지만, 비단 전주 하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주 역시 비빔밥으로 유명해, 한국의 양대 비빔밥 하면 전주와 진주가 오를 정도다. 푸릇하고 신선한 제철 야채를 삶거나 데쳐 올리고, 메인인 육회가 올라가고 국 종류가 따라 나가는 것까지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따로 진주비빔밥이라고 부른다. 잭은 이번에도 역시 오리지널 중에서 오리지널, 진주에서 가장 처음 진주비빔밥을 팔기 시작했다는 천황식당으로 향해본다.
3대가 80년 넘게 가업을 잇고 있다는 천황식당은 외관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긴다. 낡은 기와지붕을 얹은 키 작은 한옥 독채. 잘못 열었다간 그 자리에서 부서질 것만 같은 낡은 나무문, 손때는 말할 것도 없고 물을 먹었다가 닦였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낡아간 테이블과 오래된 의자까지, 클래식함을 넘어선 문화재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다. 7-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세트장에 와있는 기분이랄까. 수많은 손들이 스쳤을 맨들맨들한 스텐 주전자와 컵이 참 푸근해 보인다.
이집 불고기 맛도 메인 못잖은 맛을 자랑한다고 해서 비빔밥과 함께 주문해봤다. 양철쟁반에 비빔밥과 깍두기, 묵은지, 동치미, 오징어포무침, 선짓국이 깔려있다. 불고기는 오래된 접시에 납작하게 깔린 채 고소한 불향을 풍기고 있다. 허나 비빔밥의 비주얼은 그다지 화려하지 못하다. 꽃피우듯 밥이 보이지 않게 빼곡히 수놓인 나물들, 데코레이션의 화룡점정을 찍는 한가운데 육회와 계란 노른자까지 화려한 전주비빔밥의 비주얼에 비하면 나물과 육회, 고추장이 대강대강 올라간 이집의 비빔밥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진가는 오히려 비비면서 나온다. 기름장에 고소하게 무쳐진 나물의 향이 진동을 한다. 육회와 함께 최상급으로 유지된 재료들의 선도가 입 안 가득 향긋하게 맴돈다. 다소 슴슴했던 첫맛이 씹을수록 입안에서 묘한 깊은 맛으로 번져간다. 역시 혼이 담긴 향토음식은 천천히, 오래 씹고 볼 일이다. 함께 나온 맑은 선짓국의 시원함은 또 어떤가! 다른 지역 비빔밥에 딸려나간 국들이 평이한 탕국에 그치는 반면, 진주에서는 특별히 선지가 들어간다. 진하지만 느끼함이 없고 담백하고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다. 비빔밥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비빔밥에 정신 팔려 불고기 이야기를 잠시간 잊었다. 불고기는 비빔밥의 맛에 비하면 다소 무난한 수준이다. 이 정도의 불고기는 부산에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비슷한 종류인 언양불고기의 과한 단맛이 이집 고기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더 짭조름하고 담백하달까. 계속 손이 가는 맛이긴 하다.
이집은 밑간에 사용되는 모든 장들을 가내에서 대대로 직접 담가왔다고 한다. 장맛의 깊이가 풍부하니 벌써부터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또 언젠가 잭이 말하지 않았던가. 장맛이 좋으면 이미 게임은 끝난 거라고. 8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장사한다는 게 그냥 버티고 서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니. 새삼, 그 세월의 내공에 존경의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