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그렇게 절경일 수가 없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빼곡히 쌓인 논들이 금세 바다로 흘러내리기라도 할 듯 아슬하게 일렁이는 모습이 또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단다. 어딘고 하니, 바로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45도 경사 비탈에 108개 층층계단, 680여 개의 논이 바다까지 흘러내린 독특한 지형 때문에 마치 남다른 비밀을 품은 보물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이름도 독특한 다랭이마을, ‘다랑이’를 사전에서 찾으면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라는 해설이 나온다. 지역에 따라 어감이 조금씩 변한 것인데, 어쨌거나 둥글둥글한 발음은 매한가지다. 여기 남해에서는 ‘다랭이’가 표준어인 셈이다. 이걸 딱 잘라 표현하자면 계단식 논이겠지만, 이곳은 그런 표현으로 한정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사실 계단식 논이야 어느 두메산골로 굽이쳐 들어가다 보면,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이토록 손바닥만한 논이 아주 반듯하게 언덕에서부터 저 아래 바다 끝까지 이어진 곳은 없었다. 그리고 논이든, 집이든, 길이든 모든 것이 바다를 향해 흘러내린 곳도 없다. 앞에도 말했다시피, 대부분의 계단식 논은 산속에 포근하게 둘러싸인 것이 일반적이다. 또 산허리를 따라 매끄럽게 구불거리는 곡선의 향연은 또 어떤가. 본래 미적으로도 그렇고, 정서적으로 인간에게 유익한 것은 모난 곳 없는 곡선이다. 뱀이 지나간 흔적처럼 어슬렁어슬렁, 굽이친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마음이 편해진달까. 정상까지, 목적지까지 직선으로 내달리는 날카로움은 현대사회의 끊임없는 ‘속도전’을 떠올리게 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산비탈 등고선을 따른 지형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그 안에서 소박하게 삶의 터전을 일구어온 사람들. 평수도 다양한 논들이 한 계단의 끝을 모두 채우면, 한 평이라도 더 논을 내려고 직각으로 곧추 세운 석축을 쌓아오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그 구불구불한 길과 높은 경사 때문에, 여직 기계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곳. 그래서 사람의 손길이 죽지 않고 머무르는 곳. 이곳에는 여유로운 삶, 느림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