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선열의 묘소를 모신 독립유적지였지만, 도시 계획상의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전용 운동장도 포함되고 아기자기한 정원과 산책로도 들어섰다. 지금은 역사와 힐링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원으로 서울시민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나의 공원에 이토록 다양한 성격이 혼재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이 공원에 깃든 우여곡절이 많다는 말이다. 실제로 본래의 이름 효창원(孝昌園)에서부터 효창공원에 이르기까지 곡절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 최초에는 조선 정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자책봉까지 받았으나 다섯 살 때 요절한 문효세자를 안치한 것이 시초였다. 허나 묘역이 워낙 광활한데다가 송림도 울창하여 같은 묘역 안에 정조의 후궁, 문효세자의 생모, 순조의 후궁, 영온옹주의 묘도 함께 모셨다.
그 후 청일전쟁 때 일본 병력이 효창원 송림에 야영을 하면서부터 효창원은 공원으로 바뀌게 된다. 어찌 됐든 첫 단추가 일본에 의해서 채워졌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후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묘소도 들어서고 종내는 김구의 유해까지 안장되기에 이르러 명실공히 독립투사의 넋이 깃든 유적지로 거듭난 것이다.
효창궁원의 정문인 창렬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푸릇한 인공연못과 숲을 만날 수 있는데 여름철이면 녹음이 우거져 공기가 남달리 좋다. 이후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 백정기, 이봉창, 윤봉길 세 분의 의사를 모신 ‘삼의사 묘역’을 만나게 된다. 한데 비석 없이 들어선 묘가 하나 더 보태져 총 네 기의 묘소를 볼 수 있는데, 주인 없는 이 무덤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라 한다. 그의 유해를 발굴하게 되면 훗날 언제라도 안장하기 위함이라고. 하루 빨리 그 분의 넋을 이곳으로 거두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공원 곳곳을 실핏줄처럼 잇고 있는 오솔길을 걸으면 백범 김구 선생도 만날 수 있다. 공원의 끝까지 둘러보고 나오면 조국 해방의 염원을 바랐던 애국선열의 큰 뜻이 가슴 깊은 울림이 되어 와 닿는다.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리는 것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