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을 처음 접했던 때는 중학교 2학년, 가족여행으로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갔을 때였다. 지금이야 한라봉이 전국적으로 재배되어 육지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과일의 여왕이니, 신의 과일이라느니 소문만 ‘무성했던’ 한라봉은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제주도 구경은 뒷전이고 한라봉을 파는 가게만 찾아다니기도 했다.
▲꼭지 부분이 볼록하게 솟아오른 모양이 신기하다.
툭 솟아오른 꼭지 부분이 마치 한라산 봉우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이름 붙은 한라봉. 요즘은 전남과 경남을 비롯한 일부 따뜻한 남해 지역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된 과일이다. 하지만 감귤에서도 서귀포 감귤이 진리이듯 이름의 태생처럼 한라봉 역시 제주에서 나고 자란 것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처음 마주한 한라봉의 비주얼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귤보다 다소 큰 몸집에 표면이 귤처럼 맨들맨들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칠고 쭈글쭈글하기만 한 난해한 생김새. 게다가 꼭대기 부분은 혹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는 것이 모양새가 영 안 좋았기 때문.
대체 이렇게 못 생긴 과일의 어디가 맛있단 말이야? 의심 반 불신 반으로 까먹었던 한라봉. 뜨내기 관광객을 타깃으로 팔곤 했던 신선도와 상품성이 조금 떨어지는 한라봉을 비싼 값에 구입한 것이지만 그 맛이 과연 신세계였다. 입 안 가득 차오르는 과즙과 귤보다 훨씬 달콤했던 맛, 그 달콤함 속에 교묘하게 숨어든 신맛까지 단숨에 두 세 개를 까먹고 나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귤처럼 생겨서는 귤보다 월등히 맛있는, 게다가 크기도 커서 한 개로도 넉넉히 먹을 수 있는 그 과일이 참으로 신통방통했던 것.
한라봉이 제주를 대표하는 과일로 자리 잡은 건 1972년 무렵. 일본 농림수산성 과수시험장에서 귤나무의 접목으로 탄생시킨 교잡종이었는데, 1980년대 후반 한 농민이 제주로 들여오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90년도부터 공식 연구에 나서면서 이전까지 쓰던 일본식 명칭인 ‘부지화’ ‘데코봉’을 버리고 98년도에 마침내 한라봉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한라봉은 비타민C가 일반 귤에 비해 1.6배 이상 많고 속껍질에는 뇌중풍과 천식을 예방하는 헤스페리딘 성분이 풍부하다. 이 한라봉은 매우 온난한 기후에서 열매가 매우 천천히 익는 만감(晩柑)류다. 해서 영남 내륙지방도 적합하긴 하나 풍부한 해풍과 강우량까지 갖춘 제주에 필적할 수는 없는 노릇. 천혜의 땅 제주에서 자란 한라봉은 뛰어난 당도는 말할 것도 없고 산 함량 분포에서도 다른 한라봉 재배지역에 월등히 앞선다.
이제 왜 ‘제주의 한라봉’이어야만 하는지 이유를 알겠는가. 한라봉을 고를 때 껍질에 주름이 많은 것은 신맛이 강할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고, 손으로 들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들고 껍질이 얇되 과육과 따로 놀지 않는 꽉 찬 밀도가 느껴지는 것이 좋다. 한라봉이 부피가 너무 크고 무겁다면 한라봉초콜릿, 한라봉꿀빵, 한라봉쨈, 한라봉타르트, 한라봉주스 등의 응용식품을 고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