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유적 : 김시민장군과 논개의 충절 깃든 ..
  • 1. 촉석루

    촉석루는 버선코 모양으로 살며시 하늘을 향하고 있는 부드러운 곡선의 기와지붕 아래, 큰 몸집을 하고 서있는 누각이다. 진주성에서 얼마 못 가 만날 수 있는데, 남원 광한루와 밀양 영남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으로 이름나 있다. ‘강 가운데 뾰족한 돌이 우뚝 솟아 있다’는 뜻에서 촉석루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누각의 규모 자체가 크고 높은데다가 확 트인 자리에 들어서있어, 굽어보면 벼랑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남강이 흐르고 바깥쪽으로 벌려진 여러 봉우리의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촉석루 편액
        
     
    2. 남강의암

    남강 푸른 물 위, 진주성을 떠받치고 있는 늠름한 절벽 아래 외로운 바위가 하나 서있다. 절벽과 이어진 듯 그러나 분명히 떨어져 있는 위태로운 바위라 해서, 원래는 위암(危巖)이라 불리던 곳.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짙은 강물을 내려다보며 떠있는 바위를 보니, 아찔함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바위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내렸다는 논개의 기개가 새삼 놀라워진다. 남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조국의 안위까지 위협받자, 절치부심 끝에 그 바위에 서지 않았을까.

    ▲의암 접사(이미지 출처 : 진주시청)

    ▲의암사적비
    의암 바로 뒤로는 논개의 행적을 기린 의암사적비가 세워져 있고, 벼랑 위 촉석루에는 의기사를 세웠다. 이곳에 들른 사람마다 논개의 비장하고 숭고했던 넋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흔히 논개의 출신성분을 기생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설왕설래의 여지가 많다. 원래는 지체 높은 명망가의 규수였으나 가세가 기울어 관기로 등록됐다가 장수현감 최경회의 소실이 되었다고.
     
    3. 진주향교

    ▲진주향교(이미지 출처 : 진주시청)
    진주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그들을 기리며, 지방 백성들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지은 국립지방교육기관이다. 허나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며, 다만 고려 성종 6년대에 현재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으로 처음 세워진 것이 시초라는 점을 기록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조선 명종 13년대 현 위치초 옮겨졌으며 임진왜란(1592) 때 전소되었다가 여러 차례의 공사를 통해 복원시켰다. 동서방향의 급경사지를 깎은 터에 향교를 지어 이곳에 당도하는 자체가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일이다.
       
     
    4. 망진산봉수대

    충절의 고장 진주하면, 대부분 임진왜란과 관계된 진주성과 촉석루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실제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고 승리와 패배의 역사가 공존하는 까닭에 진주성은 좀 더 각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이 못잖게 중요한 곳이 바로 망진산 봉수대다. 전시에 그 위급상황을 연기로써 가장 먼저 알렸기에, 주요 거점지역에서 각개전투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망진산 봉수대는 남해 금산의 봉수대와 진주 명석면에 있는 광제산 봉수대의 중간지대에 위치해있어 진주의 초동방어에 매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원형의 우물 모양으로 쌓인 봉수대에는 백두산, 한라산, 진주, 진주 월야산 네 가지의 돌이 사용됐다고 한다. 한데 봉수대 기단 아랫부분을 보면 아랫돌을 뺀 듯 휑한 구멍 하나가 보이는데, 이는 금강산 돌이 놓일 자리라고. 언젠가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면 그때에 금강산 돌을 가져와 빈 부분을 메울 거라는 범국민적 염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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