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4대 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은 고종 때 지어져 궁궐 중에서는 드물게 서양식 건물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으나 임진왜란 때 당시 왕궁이 모두 불타는 바람에, 이곳을 행궁으로 사용하면서 궁의 역사가 시작됐다. 지금으로 치자면 단순 주택에서 주택의 용도를 포함한 공관으로 용도변경된 것이다.
광해군이 이곳에서 인목대비를 유폐시켰고,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임금이 이곳에 지내거나 기거했다. 광해군의 폐위와 함께 이곳 역시 270년 동안 별궁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왕궁으로 복기됐다.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서 이곳으로 환궁하게 되면서 줄곧 사용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에서 이름을 덕수궁으로 지은 것이다.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었다.
고종이 사랑했던 곳인 만큼 그가 승하한 후 덕수궁 역시 궁궐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채 쓸쓸히 남겨졌다. 궐을 재단장하여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1933년 무렵. 대부분의 궁이 그렇듯 덕수궁 또한 모두에게 외면 받고 역사 속으로 유폐 당한 시간이 길었기에, 남겨진 모습이 무척 쓸쓸하다. 현재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흥전 및 석조전 등에 불과하다. 화려한 시절을 간직했던 대형 궁궐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흔적이다. 그러나 마치 한 국가의 흥망을 보는 것처럼 비애 어린 궐의 운명적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 이곳은 더없이 소중하다.
Jack's Tip.
1. 궐내 최초의 서양식 건축기법으로 만들어진 석조전도 빼놓지 말고 둘러보자. 거대한 신전을 연상케 하는 회색 열주가 받치고 선 그 모습이 참으로 웅장하다. 그 앞 푸른 초지 위에 솟아있는 분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분수라고.
2.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건물 정관헌도 있다. 당시에는 퓨전 건축기법으로 큰 화제가 됐을 터. 이곳은 고종이 연회를 열거나 차를 즐겨 마시던 장소로 전해지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