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초고층 빌딩 사이에 둘러싸인 비밀의 고찰 봉은사. 세월 따라 만수강산이 변해가며, 자연이 있던 자리를 대신 메운 빌딩들 속에서도 제 자리를 꼿꼿이 지켜온 모양이다. 고찰 바깥을 병풍처럼 에워싼 그림이 다소 이질적이지만, 세속에는 아랑곳 없다는 듯 봉은사는 호젓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사바세계에 찌든 인간 군상이 세속의 때를 씻고 싶은 그 순간, 언제든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4개의 나무문에 사방위 신이자 악으로부터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위압적으로 그려져 있는 봉은사의 첫 관문, 진여문이 보인다. 이 문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의 계단길과 그 왼쪽에서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고색창연한 절집과 무척 잘 어울리는 노송과 부도, 공덕비 등이 도열해 있다.
화려한 단청과 꽃무늬 창살이 어여쁜 법왕루와 봉은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을 지나면 높이 23m에 달하는 거대한 미륵대불이 서있는 미륵전이 나타난다.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정성스레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염원을 두 손 가득 담아, 성심껏 기도하는 모습이 갸륵하다. 부처가 이들을 굽어 살펴,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봉은사에서는 서울의 다른 고찰과 마찬가지로 불교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와 템플라이프를 운영 중이다. 봉은선원에서 참선과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으며 템플스테이는 1박2일, 참가자가 열 명 이상일 경우 언제든 가능하다. 이에 비해 템플라이프는 3시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사찰 생활을 압축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어, 템플스테이보다는 부담이 덜 가는 편이다. 템플라이트는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며 발우공양, 참선, 예불, 탁본 등 불교의 핵심적인 체험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Jack's Tip.
봉은사 판전 왼쪽에서 시작해 산 언덕을 쭉 잇고 잇는 숲길을 산책해보는 것은 어떨까. 울창한 수목에 둘러싸인 길은 호젓하기 그지없어 살랑살랑 걷기엔 딱이다. 봄이면 철쭉과 영산홍으로 가득 덮인 꽃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