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 보고 “어라? 여기가 사진으로 보던 그곳인가?”하는 사람들 좀 있을 거다. 그렇다, 이곳이 바로 익살스러운 벽화 앞에서 다들 사진 한 장씩 찍고 간다는 동피랑이다. 약간 기울어진 길 위에서도 애써 벽에 그려진 날개 한가운데 제 몸 집어넣으려 잔뜩 웅크리고 섰던 그곳. 다들 작심하고 카메라 챙겨 떠나는 그곳, 사진으로 눈요기를 먼저 하고 찾아오는 그곳, 동양의 나폴리 통영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마을이다.
통영항 중앙시장 뒤편, 남망산 조각공원과 마주보고 선 봉긋한 언덕배기에 들어선 마을 동피랑. ‘동쪽 피랑(벼랑)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지금이야 주말이면 하루 평균 2~300백 명씩 찾는 유명 관광지지만 마을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깜짝,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철거 예정지 낙인찍힌 곳이었다. 얼마 후 시민단체는 “달동네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며 보존가치를 만들기 위해 예술가들과 함께 동피랑에 뛰어든다. 마을 안에서 실핏줄처럼 얼기설기 얽혀있던 골목 곳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구불구불한 옛날 골목, 군데군데 바닥이 깨지고 패인 자리, 머리 위로 거미줄처럼 아슬하게 이어진 전깃줄, 녹록찮은 바닷바람에 끊어질 듯 펄럭이는 빨랫줄, 녹슨 창살 사이로 내려앉은 세월의 더께까지, 우리가 골목에서 기대하는 모든 시큰한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동피랑은 달동네의 정석이다. 한편으론 그림이 그려지기 전 마을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화사한 색을 입기 전 침침한 골목, 그 속에서 부대끼며 살았을 거뭇한 얼굴의 사람들.
카페 근처의 벽 앞에 누군가 버려놓은 오디오가 놓여 있고, 삐죽이 튀어나온 한 가닥 전선이 그림이 되어 벽을 타고 올라간다. 줄이 끝나는 곳엔 또 커다란 헤드폰이. 너나 할 것 없이 헤드폰에 귀를 대어보는 모습이다. 헤드폰 벽화 옆에는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잠시 앉아서 아침 바다를 보시소’라고 씌어 있다. 또 커다란 고래의 그림부터 피라미처럼 작은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듯한 그림까지 대부분의 그림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Jack’s Tip.
1. 마을을 한 바퀴 돌다보면 ‘파고다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카페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조그만 구멍가게지만, 이집 주인 할아버지가 종이컵에 타주는 커피믹스 한 잔은 나름대로 운치 있는 맛이다.
2. 본문에서 언급한 ‘아침바다를 보라’고 권했던 나무 의자에 앉아, 꼭 아침바다를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