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로 전파를 탄 후 어쩌면 통영보다 더 유명해졌을지도 모르는 소매물도. 통영항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 배가 파도를 헤치며 소매물도를 향해 나간다. 배가 지나가는 자리에 새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포말을 어린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시원한 바닷바람에 연신 감탄사를 내뿜는 쪽은 외지인이거나 초행객. 그저 그런 심드렁한 표정으로 잠을 청하는 쪽은 현지인이거나 여러 번째 소매물도행을 맞이한 고수들. 그렇다, 소매물도는 여태 가보지 않은 사람에겐 막연히 가고 싶은 섬, 이미 가봤던 사람에겐 또 가고 싶은 섬, 가슴에 담아 둔 섬인 것이다.
선착장에 발을 디디니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뚝 솟아난 산처럼 장엄한 기세로 여행자를 맞이하는 소매물도의 모습이 생각보다는(?) 친숙한 느낌이다. 손바닥만한 선착장 크기도 그렇고, 여기저기 쓰레기와 공사 현장을 보니 이제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타버린 것 같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섬의 유일한 평지에는 17년 전 폐교된 자그마한 분교가 보인다. 지금은 비록 10여 가구밖에 남지 않았지만, 거주민들이 꽤 많았던 옛날에는 이 분교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쳤으리라.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과 바로 옆 등대섬의 전경은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필수 코스다. 지금까지는 아주 가뿐한 소매물도 코스, 백미는 망태봉 코스이다.
망태봉에서 가장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으니 망태봉 코스를 참고하자. 배에서 함께 내렸던 사람들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망태봉을 향한 길로 모여들기 시작하면 그때 슬쩍 합류하는 것이 좋다. 이제 가벼운 산보는 끝났고 치열하게 오를 일만 남았다. 경사가 꽤 험준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이와 손잡고 오르기 보다는 독립적으로 각개전투하길 바란다. 어디까지나 효율성을 생각해서. 가파른 등로에서는 건어물을 파는 할머니들도 만날 수 있다.
정상에 올랐다. 사방에 바람이 가득해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다. 사정없이 휘날리는 옷깃과 함께 정신도 부여잡고, 살짝 눈을 떠보면 충격적인 비주얼이 눈앞에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옥빛 바다, 아래에는 묘한 비밀을 감춘 채 얼굴만 내밀었을 것 같은 점점이 섬들. 그 사이를 항해하는 유람선과 작은 어선까지. 한국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이국적이었다가 잠깐 제주의 풍광이 겹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감동을 토해내기엔 이르다. 소매물도의 하이라이트인 등대섬이 남았기 때문이다. 섬 정상부에 새하얀 등대가 깃발처럼 세워져 있다. 등대섬으로 향하는 길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곳의 조망은 소매물도 여행의 정점을 찍어준다.
Jack’s Tip.
1. 망태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산세가 거친 편이라, 기본적인 등산장비를 갖추는 것이 좋다.
2. 등대섬까지 이어지는 모세의 기적. 물때가 맞아야 들어갈 수 있으니, 배편을 선택할 때 참고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