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를 보러가는 길, 기분 좋은 산책로로 시작한다. 이름 난 관광지의 그것처럼 목조 데크를 깔거나 편의를 고려한 일체의 시설물도 설치되어 있진 않지만, 비오는 날이면 흙 내음이 솔솔 묻어날 것 같은 다정한 길이다. 나무와 풀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는 모습이, 여름철 안으로 들어서면 제법 시원할 것 같다.
500미터 쯤 걸었을까. 터널 같던 길이 끝나고 동굴 밖으로 나온 것처럼 밝은 빛이 보인다. 강 건너로 깎아 놓은 듯한 기암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자라난 나무가 이 숨은 비경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바로 이곳, 반구대 일대의 시연댐 서쪽 기슭의 암벽에 반구대 암각화가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내륙 깊숙한 지역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니, 다소 의아할 법 하지만 옛날에 울산 일대는 바닷 속에 잠겨 있었던 지역이라고 한다. 바위에 새겨진 고래사냥 그림을 통해, 태화강 상류 지역은 바닷물이 드나들었던 해안가 지역이었음을 반추해본다.
암각화가 새겨진 암벽 아래로 댐이 있어,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이나 댐이 가득 찰 때에는 수면 밑으로 잠겼다가 물이 마르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사이에 둔 물 때문에 육안으로는 자세히 살펴보기 힘들고, 건너편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암벽 언저리를 더듬어볼 수 있다. 고래, 개, 늑대, 호랑이 등의 짐승부터 사람의 모습까지 다양한 생물종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는 수렵문화를 이뤘던 선사시대 생활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자료가 된다.
선인들은 바위에 필사적으로 그림을 새겨 넣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은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그려낸’ 것이 아니라 풍족한 생활에 대한 염원, 그리고 후손만대로 이어질 꿈과 소망을 강인한 생명력으로 ‘각인’시킨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