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인 윤동주는 일제치하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데에서, 그는 아마 잎새에 이는 아주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했으리라. 지금 소개할 이 집의 주인은 최초에 찻집을 새로 열면서, 차창 밖으로 상호를 고민하다가 문득 윤동주의 시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도록, 늘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가 깃든 ‘잎새바람’이 태어났다. 주인장의 신념처럼, 이곳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 농산물과 無 화학조미료를 고집하고 있다.
양산의 덕계,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한적한 산골마을에 자리를 튼 식당. 본관과 별관으로 나뉜 건물들은 하나같이 지붕에 기와나 대나무를 올렸다. 문짝은 당연히 나무, 군데군데 창호지를 바른 예스러운 창도 보인다. 본관은 여느 식당과 다름없이 널찍한 홀에 테이블을 모아놓은 모습이지만, 별관은 하나하나가 모두 독채이다. 손들이 뜸할 시간에 찾아가면 독립된 공간에서 여유로운 식사를 할 수 있을 듯하다.
마당에는 나무도 꽤 심어져 있고 제철에만 얼굴을 내미는 꽃들도 수런수런 피어나 있다. 한쪽 구석에는 크고 작은 장독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그 앞 나무의자에서 조용히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기다란 목줄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니 주인네가 지나가는 길냥이 한 마리 거두어 보살피는 듯하다. 고녀석, 참 똘망똘망하게도 생겼다.
한 별채에 조용히 발을 들이니 오랜 시간 동안 은은하게 달아오른 구들장의 기운이 느껴진다. 한쪽 벽면에 널찍하게 창을 내놓았는데, 그리로 장독대며 꽃이며 나무며 하는 자연의 선물들이 그림처럼 내담긴다. 눈 호강은 웬만큼 하고, 이제 식사를 주문해야 할 때. 다양한 한식 메뉴로 구성된 차림표가 보이지만, 늘 그렇듯 잭은 소문난 메뉴를 시킨다. 버섯탕수와 도토리묵, 김치전이 곁반찬으로 산채비빔밥과 함께 나온다는 솔바람정식. 잎새정식은 여기서 곁반찬들을 뺀 것이고 솔바람정식Ⅱ는 산채비빔밥이 떡국으로 대체된 것이다.
산채비빔밥은 고운 색감의 놋그릇에 적당한 양의 고소한 나물들이 들어가 있어 맛이 참 좋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도토리묵. 강원도산 도토리가루에 북한산을 섞어 만든 것이라는데, 묵의 식감이 찰지고 탱글탱글했다. 접시 센터를 장식한 채소무침과의 궁합도 아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