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남부시장은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좌판도 다양해지고 값싸고 질 좋은 물목들이 넘쳐나, 마치 세일기간에 백화점을 찾은 마냥 수많은 인파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한데 장이 들어서지 않는 날에도 유독 시장 내 붐비는 구석이 있으니, 그 자리에는 바로 태평양분식이 들어서 있다. 분식집이 뭔 대수라고 밤낮을 안 가리고 문전성시냐고? 이집은 소문난 맛집에 가격까지 착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판목에 새긴 가게 이름, 색을 입힌 부분에 나무가 쫙쫙 갈라지고 비틀려 흉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이 또한 어찌 보면 전통이고 운치다. 입구에 발을 들이니 내부는 더 범상치 않다. 촌스러운 문양의 분홍색 타일이 가지런히 깔려있고, 왼편에서는 솥단지만한 양은냄비가 선지국을 가득 담은 채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그 옆으로는 묵은 때가 잔뜩 낀 나무 선반위로 너저분하게 식기들이 쟁여져 있다. 큰 전기밥솥도 두 개나 있다. 이 작은 분식집에 밥솥을 두 개나 두는 걸 보면,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떡볶이나 어묵, 튀김 따위의 조악한 군음식을 팔 줄 알았던 예상도 12가지나 되는 화려한 차림표 앞에서 뒤집어진다. 훑어보니 김밥, 비빔밥, 칼국수를 비롯한 다양한 국수들, 국밥류 등을 취급하는 어엿한 식당 차림이다. 제일 유명하다는 칼국수를 소자(3,000원)와 대자(3,500)로 나눠놨는데, 대자는 간단히 무시해주길 바란다. 웬만큼 먹성 좋은 사람도 다 못 먹을 정도로 양이 엄청나다. 씨름 선수 정도는 돼줘야 다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행과 함께 칼국수 소자와 김밥 1인분을 시켰다. 1인분에 두 줄이 나오고 가격은 단돈 2,500원이다. 옆 테이블 단골의 말에는, 십 년 전 가격이랑 크게 다를 바 없단다. 십 년씩이나 이 집을 찾고 있다는 그 단골손님은 학창시절부터 추억 쌓기가 계속된 것이라 한다. 이렇듯, 학창시절에 허기진 배를 채웠던 손님이 직장인이 되어서도 찾아주고 직장인은 결혼해 애 엄마가 되어서도 찾아오는 식이다. 맛집의 역사는 이처럼 따뜻하게 채워진다.
칼국수는 꽤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냈다. 아마도 육수의 영향이 큰 듯한데, 이집은 여러 가지 재료로 은은하게 뺀 육수를 사용하되, 다른 집에서 으레 넣는 바지락, 홍새우 따위의 자잘한 재료를 넣지 않는다. 그 흔한 애호박도 썰어 넣지 않고 대파만 송송 썰어 올린 것이 전부, 이 담백한 맛에는 이집이 내놓는 마성의 깍두기와 완벽한 궁합을 자랑한다.
일행과 배불리 먹고 치른 값은 6천원이 끝. 혼자 칼국수 한 그릇 먹었다면 3천원이 나왔을 거다. 눈물 나는 가격이다. 추운 날이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이집에서 따뜻한 3천원의 행복을 누려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