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유산이 대개 그렇겠지만, 경주만큼이나 개국신화를 비롯한 왕의 위업을 칭송하는 설화가 많이 얽혀있는 곳은 드물다. 신라로부터 이어져온 명맥이 천년고도 경주의 혼으로 계승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것도, 그래서 이해가 되는 바이다.
쥐와 까마귀의 안내로 신라 21대 왕인 소지왕의 암살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서출지. 서라벌의 성스러운 땅으로 보호받았지만, 현재는 당시의 유물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이요당’이란 정자만이 연못 가장 자리에 외로이 서있을 뿐이다.
서출지도 한때나마 호수 위로 잔잔히 떠오른 연꽃이 군락을 이루며 초록빛 절경을 보여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연꽃의 피어남이 예전만 하지 못하고, 차츰 드문드문 얼굴을 보기 힘들어지자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아련히 떠밀려갔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연꽃이 자취를 감추어간 것은 필연적으로 관리 소홀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방치되다시피 놓인 정자의 모습이 더욱이 그렇다. 시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연꽃이 자취를 감춘 연못의 황량함과는 아랑곳없이 고운 자태를 뽐내며 피어난 배롱나무 꽃만은 무던히도 아름답다.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다고 하는데, 한여름에 피어나 타오르는 여름과 함께 호흡하며 백일 간 수없이 꽃이 지고 피는 생명력에 벅찬 감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