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과서의 단골메뉴이자 하나의 문화유산을 넘어, 신라의 커다란 상징처럼 여겨지는 첨성대. 신라시대로 말하자면 궁성이 있던 반월성과 계림의 바로 위쪽, 대릉원의 고분군과 석빙고 안압지와 이웃하고 있다. 주택가는 아니고 관공서가 모여 있던 지역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거기에 당시 신라의 천문대가 있던 곳이 첨성대 주변인데, 신라시대 모든 목조건축물이 폐허가 되어 사라진 것처럼 운명을 같이 했다. 그 상징물이던 첨성대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학계에서는 10미터도 되지 않는 초라한 규모의 첨성대를 두고, 그 기능적인 면에서나 외적인 면에서 끊임없이 논쟁중이다. 실제로 방문한 관광객들조차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는 명성을 무색하게 만드는 소박한(?) 크기에 많이들 실망한다.
하지만 고도의 의미가 담겨진 상징성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을 알고 나면 첨성대가 왜 이토록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산인지 알게 된다. 선조들이 자연의 진리로 여겨왔던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낳다)’을 따르고 있는 정사각형의 기단과 원 모양의 몸체. 심지어 원을 이어가는 은근한 곡선은 아주 매끄럽고 전체적인 모양이 신라의 토기 기대와 닮아있다. 뿐만 아니라 몸체의 단수가 가지는 수치의 여러 가지 상징성과 사용된 돌의 숫자의 의미까지, 고도로 계산되고 연구한 상징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첨성대에 대한 그릇된 오해를 풀고 섣불리 예단했던 실망감을 거두자. 그리고 저녁 무렵 주위를 은은하게 밝히는 조명에 어우러지는 첨성대의 위용 넘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아보자.
입장료 : 500원
입장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