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봉길리에는 동해 만경창파를 품고 들어선 크고 작은 자연바위가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 세력까지 몰아내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영주, 문무대왕이 영면에 든 곳이다.
왕이 바다에 잠들었다니, 조금 의아할 지도 모르겠다. 죽어서까지 바닷길로 쳐들어올 왜구를 막길 바랐던 임금은, 재정을 낭비하고 많은 사람의 수고만 들이는 장례 문화를 한사코 거부하고 궁문 밖 뜰에서 불교식으로 화장할 것을 주문했다. 선왕의 검소한 성정과 호국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화장한 납골을 수중에 묻고 동해 입구 큰 바위, 지금 이 자리에서 장사지냈으므로 달리 ‘대왕암’이라고도 부른다. 해서 해녀조차 드나들지 않는 성역으로 지켜져 오다가, 수중릉까지 발견하게 되면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대왕암 주위로는 남쪽방향으로 작은 바위가 이어져 있으며, 그 둘레에는 썰물 때만 보이는 더 작은 바위가 마치 호석처럼 놓여있다.
거침없는 물살과 함께 달려드는 동해의 포효. 그리고 그를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온몸으로 파도를 받아내고 바다를 달래며 진중히 서있는 대왕암의 모습이 제법 늠름하다. 해무와 운무가 그득히 피어오르는 이곳의 새벽 일출이 또 하나의 장관이라, 사진사들에게는 늘 인기 좋은 출사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