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고도의 경주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재로 연상될 만큼 문화유산 부자 도시이다. 길을 돌아다니다보면 예사로 마주치는 것이 문화재라, 경상도 지역에 연고를 둔 사람은 수학여행 단골코스로 이미 몇 번이나 마스터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잠깐의 몇 번을 스치듯 휙휙 둘러보고 ‘시시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시시하게 만들어진 것도, 시시한 가치를 지닌 것도 없이 모두 소중하다. 그중, 경주를 너머 한국, 나아가 동양 문화 전체를 대표할 만한 스케일이 있으니, 바로 석굴암이 되겠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석굴암에 데려가면, 우선 압도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규모와 위용에 할 말을 잊는다고 한다. 다음은, 이곳이 세계 유일의 인조 석굴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한 차례 더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석굴암의 건축 방식은 유례없이 독특하며 그 수준 높은 완성도는 견줄 데가 없다. ‘굴窟’이라는 형식적 특징을 차용하고 있지만, 사실 돌이나 땅을 파내지 않았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굴이 아니라 방이라 해야 맞다.
애초에 석굴암 건축가 김대성은 인도의 전통 양식에 영감을 받아 굴을 파내려 했다. 하지만 그들 나라의 부드러운 사암과 다르게 한국의 돌은 단단한 화강암이었기 때문에, 이를 쌓아 돔 형태의 방을 만든 것이다. 건설 기간만 약 40년에 달한다는 석굴암에서, 돔을 쌓는 일이 아마 제일 힘들었을 것이라 전문가들은 말한다. 돌을 원형으로 부드럽게 쌓은 다음 마지막 마개돌을 올려놓는 과정에서 그만 깨트리고 만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불법을 지키는 신이 네 명씩 서 있고, 바로 옆에서 근육질의 인왕상이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서 있다. 이곳은 부처님께 절을 하고 공양을 드리는 장소로 만들어진 사각형 모양의 앞방이다. 이를 지나면 깊숙이 들어간 원형의 뒷방이 나오는데, 부처님이 자비롭게 앉아 계시고 그 벽면에는 여러 불상들이 좌우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방 한 가운데 연꽃자리 위에 부처님을 조각해 놓은 본존불, 그 머리가 바로 뒤 광배에서도 정중앙에 온다. 고도로 계산된 배치에는 조금도 빈틈이 없어 놀랍다.
석굴암의 과학성과 현대 건축 못잖은 치밀한 공간 구도 계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불상 앞에 서면 시선이 아주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160cm의 키를 가진 사람 눈높이에 딱 맞춰 계산된 것이라 한다. 본래 타원형인 광배도 이 자리에 서면 동그랗게 보인다고. 또 밀폐된 석굴 안에 생기는 습기를 막기 위해 돔 바닥 밑으로 샘을 흐르게 했다. 온도를 낮춰 바닥이 차가워지면 실내의 습기가 이슬로 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굴암을 보수했던 일제는 영문을 몰라 샘을 없애버리고 콘크리트로 돔 위를 막아버린다. 식민지 역사의 뼈아픈 결과가 돼버린 셈이다.
Jack's Tip.
석굴암은 유리벽 밖에서만 봐야 할 정도로 엄격한 보존 수위를 지키고 있다. 본존불을 사진 촬영해서도 안 되니 참고하길 바란다. 대신 그 아쉬운 마음, 석굴암을 오르는 아름다운 산책로와 이곳에서 보는 아름다운 일출로 채울 수 있길.
입장료 : 성인 4,000원 / 청소년 3,000원 / 어린이 2,000원
입장시간
- 봄․가을 :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 동절기 :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 하절기 :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