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발상지이자 수도였던 서라벌(경주의 옛 지명), 옛 신라인의 기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경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양동마을을 비롯하여 수백개의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역사문화 도시이다.
경주역사유적 대릉원 지구애 위치한 천마총은 경주시(慶州市) 황남동에 있는 신라 고분(古墳) 중 하나로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3년 4월 16일 발굴이 시작되어 8월 20일에 발굴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155호 고분으로 불렸다고. 모두 1만 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천마도장니. 자작나무 껍질에 순백의 천마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회화자료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고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라는데 큰 의의를 가진다. 천마총이라는 명칭은 이 때문에 붙여졌으며, 현재는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내부에 공개되어 있는 천마도(천마도장니)는 모조품. 진품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등의 야외활동 시에 빠지지 않았던 경주, 그리고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불국사는 불교교리가 사찰의 건축물을 통해 잘 형상화된 대표적인 사례로 아시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미를 지니고 있어 지정되었다고.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본사(敎區本寺)의 하나로 내부에는 대웅전과 그 앞뜰에 동서로 마주서 있는 석탑이 있는데, 서탑은 우리가 흔히 석가탑(釋迦塔)이라고 부르는 국보 제21호 ‘불국사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마주한 동탑은 십원 동전의 뒷면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다보탑(多寶塔)은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석 석탑으로 현재 국보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불국사 입구에는 외관의 아름다움과 공학적인 미까지 갖춘 청운교와 백운교가 운치를 더하니, 불국사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유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화려함보다는 정교하고 소박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세계유일의 인조 석굴로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신앙과 염원, 뛰어난 건축미, 성숙한 조각기법 등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으로 국보 제24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정식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래 이름은 석불사이다.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에 예속되었고,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암 대신 현재의 석굴암(石窟庵)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너무나도 단단한 화강암으로 굴을 파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여 인조로 만들었다고 하니, 당시 신라의 기술과 문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한다. 석굴암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사실, 굴보다는 내부에 있는 조각상들에 있는데,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불상인 본존불은 그 형태의 위엄만큼이나 통일신라 불교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본존불 뒤에 위치한 관음보살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하여 돌로 조각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 본존불과 함께 석굴암 안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하니 참고로 해두자.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 바다에 돌섬의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문무대왕릉은 신라의 무덤가운데 유일한 수중릉(水中陵)이다. 재위 21년만인 681년에 사망한 문무왕이 자신을 불교법식에 따라 화장을 하여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겨, 동해의 입구에 있는 큰 바위에서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에 따라 이 바위를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로 부르고 있다고. 경주에서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는 명소로 손꼽히는데, 해변으로부터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어 출입은 어렵다.
간혹 이곳을 울산 대왕암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뜻과 가치가 엄연히 다른 곳임을 인지하길.
▲ 양북면 봉길리에 있는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水中陵) (사진출처 : 경주시 문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