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정동길로 빠지는 삼거리 왼편, 정원을 따라 올라가면 마당이 하나 보인다. 이곳은 옛 대법원 터에 위치한 서울의 상징이자 우리나라 미술관을 대표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이다. 건물에서 제법 중후한 느낌이 풍겨져 나오는데, 이는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의 전면을 고스란히 보존한 채 신축한 것이라 그렇단다. 첫인상이 참 고풍스럽다.
400여 년 수령의 단풍나무와 향나무, 잣나무 등이 우거진 미술관 진입로에는 건강한 녹음이 가득하다. 훌륭한 조경과 조각품이 담장을 허문 전시관 밖에도 이렇게 전시되고 있으니 안팎으로 예술이 충만하다. 꼭 전시회 관람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부담 없이 찾아가 거닐다 올 수 있는 곳이랄까. 오래된 연인 같은 편안한 매력이 느껴졌다.
총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6개의 대형 전시실과 자료실, 세미나실, 강의실, 카페테리아, 뮤지엄 숍과 수유실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뮤지엄 숍과 카페테리아가 들어서 있는 3층 카페는 양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독특한 구조다. 전망 좋은 통유리창을 거울처럼 앞에 두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잃어버린 삶의 여유를 찾게 해준다.
그동안 샤갈, 피카소, 마티스, 마그리트, 고흐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도맡아 전시해왔던 이곳은 블록버스터 급 전시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크고 작은 양질의 기획전시를 많이 해왔다. 1988년 개관이래 25년간 한결같이 동시대미술의 현황을 볼 수 있는 전시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곳도 바로 이곳 서울시립미술관이었다. 이러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