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대떡, 왜 돈 없으면 부쳐 먹을까?!
  • 돈 없으면 부쳐 먹지 ‘빈대떡신사’
    허나 그런 가난도 낭만으로 보이게 하다
     
     


    겉모습은 흡사 오꼬노미야끼를 떠올리게 한다. 필자는 그나마 ‘젊은’ 세대라 그 옛날 피맛골 쪽집에서 시큰한 막걸리리와 찢어먹던 빈대떡의 제 맛을 몰라, 왜국의 음식인 오꼬노미야끼가 먼저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먹다 보면 그 화려한 오꼬노미야끼와는 다르게 정갈하고 소박하며, 퍽 청순한 음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녹두를 갈아 야채와 돼지고기, 해산물 등을 넣어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로 바삭하게 구워내는 겉 모양새가 일단은 뭔가 서민적이다. 어렸을 적 엄마 손잡고 시장통을 쏘다니면 곧잘, 이런 전 지지는 냄새가 진동하곤 했다. 어렸을 땐 그저 삶은 옥수수, 떡볶이, 피자빵 같은 데만 정신이 팔리니 전 굽는 냄새가 맛있는 냄새라고 느끼지 못했었는데... 역시 세월따라 입맛도 변하고, 그만큼 늙기도 하는가보다.

    나랏님 말 타고 다니면 길 피해
    서민들이 허리 꼿꼿이 펴고 다니던 행복한 길 '피맛골'
    외식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이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로변에 번듯한 식당을 차린다는 일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당시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해, 땅값 비싼 대로변에 식당을 차려 단가가 센 메뉴를 걸어놓는다 해도 그걸 여유롭게 사먹어줄 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해서 그런 일은 가능할지 모르나, 적어도 쪽박 차는 지름길처럼 여겨졌을 게다. 하여 대로변이나 큰길은 피하고 실핏줄같은 골목으로 접어들고 접어들어 하나 둘 문을 열었던 식당들이 모여 ‘종로 피맛골’과 같은 진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피맛골이란 ‘말을 피하는 길’이란 뜻으로 옛날 윗사람들이 말을 타고 다니던 큰 길을 피해 아랫것들이 허리 펴고 편하게 다니던 길이었다 한다. 그 폭은 사람 둘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으나 마음만은 한없이 편했을 터. 아무리 하찮은 아랫것들이 다닌다 해도 어쨌든 사람이 왕래하는 길이니 그 길 따라 자연히 식당도 함께 생겨난 것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빈대떡을 전문으로 하진 않고 국밥도 말고 빈대떡도 부치고, 족발도 썰고 빈대떡도 부치며 이 빈대떡을 사이드메뉴 격으로 팔곤 했다.

    녹두장군 생각나는 생명력 강한 녹두
    서민적인 재료와 어우러져 배도 부르고 맛도 좋은 음식으로 태어나다
    빈대떡의 베이스는 녹두다.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나는 생명력 강한 녹두라서, 먹고 살기 힘들었던 보릿고개 시절에도 녹두는 천지에 널렸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그 재료를 잘 갈아서 값싼 돼지기름에 지지기만 하면 한끼 식사로도 거뜬한 맛있는 전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사정이 좋으면 숙주도 넣고, 다른 야채도 넣다가 나아가 고기나 오징어, 굴 따위의 해산물도 첨가하게 되는데 점점 그 맛의 풍성함이 깊어지면서 빈대떡의 인기도 높아져 갔다.
    시초가 그러했듯 녹두전은 돼지기름에 지져야 가장 고소한 맛을 낸다. 한데 요즘은 웰빙이다 뭐다 해서, 식물성 기름이다 해서 더 비싼 콩기름 같은 걸 가져다쓴다. 그 속내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빈대떡 노포들은 여전히 돼지기름을 고수한다. 돈을 번 것으로 치면 뜨내기 집들보다 더 대박을 쳤을 테지만, 기름 값을 아낀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순전히 맛 하나 때문에 돼지기름을 쓴단다. 그나마도 깨끗한 돼지기름을 얻기 위해, 비곗덩어리를 끓이거나 가열해 돼지기름을 내고 더러운 부분은 걷어내는 세심한 배려를 기울인다고.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에게 빈대떡은 여전히 돈 몇 천원으로 그 절반에 달하는 술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행복이다. 돈 있는 자들에게 빈대떡은 추억 그 자체이고, 새로운 운치를 느끼게 하는 우리의 전통음식이다. 돈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이 만났어도 동등하게 몇 천 원씩 내고 좁은 목로를 사이에 둔 채 다정하게 빈대떡을 찢어먹어야 하는, 입장의 동일함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다.
      
    * 추천 맛집
    ① 열차집(02-734-2849 / 서울 종로구 공평동 130-1) : 피맛골에서 장사를 하다가 재개발 때문에 밀려난 집이다. 허나 용케도 피맛골과 흡사한 분위기의 골목을 찾아내 그때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했다. 빈대떡 맛이야 명불허전.
    ② 청일집(02-732-2626 / 서울 종로구 청진동 277) : 청순한 빈대떡 비주얼의 극치를 보여준다. 곱게 갈린 녹두와 군데군데 쪽파, 중앙에 돼지고기 조각 몇 점이 전부. 소금을 섞어 간을 맞춘 물과 녹두를 황금비율로 희석한 게 포인트가 아닐까.
    ③ 유진식당(02-764-2835 / 서울 종로구 낙원동 221) : 빈대떡이나 수육을 먼저 먹고 이집에서 빈대떡 못잖게 유명한 냉면을 주문해 먹는 것이 유진식당만의 ‘코스’로 알려져 있다. 빈대떡으로 반주 한 잔 걸친 다음 끓어오르는 속을 시원한 냉면으로 식혀주는 것이다.
     
     
     

Jack's Not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