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인고의 동면에서 깨어나 새해, 새 계절의 싱그러움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봄꽃이 아름답듯 아직 채 녹지 않은 차가운 땅을 뚫고 꼿꼿하게 자라난 봄나물도 나물 중 으뜸이다. 시인 고재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땅의 첫 봄을 가져 오는 위대함의 뿌리들”인 셈. 겨우내 움츠러들던 대지와 공기처럼 뻣뻣해진 몸, 퍼석한 입안과 헛헛한 가슴! 마음보다 가장 먼저 봄을 타는 몸을 봄의 에너지로 깨워주는데 푸릇한 봄나물만한 것이 있을까. 봄나물 중에서 제일은 아마도 향기 가득한 미나리가 아닐까.
연둣빛 물감을 개어놓은 듯 강렬한 색감과 그 속에 달콤쌉살한 맛을 품은 미나리는 단연코 봄의 전령사. 줄기와 잎을 돌돌 말아 돼지고기 한 점 올려놓고 쌈을 싸먹으면 아삭아삭한 식감에 미나리 특유의 강한 향이 퍼지면서 최고의 맛을 선사해준다. 또 날것 그대로 독자적으로 먹는 방법 외에 싸채소, 초무침, 숙회는 물론 해독과 숙취해소에 효과적인 국물 요리의 부재료로도 제격이다.
하여 안양해서 유명하다는 불고기를 먹으러 식당엘 가보면 열에 여덟 집은 싱싱한 미나리도 함께 내어준다. 미나리가 육고기와 특히 궁합이 좋기로 소문이 나면서부터다. 미나리는 자라는 곳과 재배 방법에 따라 논미나리, 멧미나리, 돌미나리로 나눌 수 있다. 논미나리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마트 등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미나리에 해당되며 줄기가 길고 먹음직스럽지만 향은 비교적 약하다. 대신 멧미나리는 산간계곡이나 산기슭, 수림 같은 습한 곳에서 자라는 멧미나리는 다소 질기긴 하지만 향이 진하다는 장점이 있다. 돌미나리는 샘물이 흐르는 개울가나 논두렁의 습한 곳에서 자라나 깊은 향을 자랑하지만, 하수의 오염 등을 걱정해 회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 미나리꽝
미나리는 거친 땅에서도 물만 있으면 비교적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지만 천혜 환경을 갖춘 언양에서 자란 것은 더 특별하다. 지하 130m의 청정수로 재배하는 언양 미나리는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그 맛과 향이 뛰어났다. 1919년에 발간된 <언양읍지>의 토산조에 실린 기록을 보면, ‘언양미나리는 고을 동쪽마을 대밭 길에서 나는데 질펄 밑에 나는 그 미나리를 파랗고 보기도 좋다“고 했다. 그러니 이 미나리 두어 단 사가서 국에도 넣어 끓이고 초무침도 해먹어 보자. 죽었던 입맛이 무럭무럭 되살아날 것이다.